대문 그림 : “테노치티틀란 정복”(The Conquest of Tenochtitlan), 1521, 작자미상. (출처 : wikipedia, 링크된 고화질 보정 이미지 출처 : National Geographic)

 

 

1521년 8월 아스텍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이 정복되었습니다. 그해 5월에 시작된 전쟁 속에서 에스파냐의 코르테스(Hernán Cortés) 군대는 테노치티틀란의 궁전, 사원, 경작지 등 모든 것을 파괴했습니다.

 

한정된 물과 식량으로 테노치티틀란의 시민들은 세 달을 버텼다고 합니다. 그러나 유럽인들이 들어오면서 천연두가 번지고 투항자들이 늘어갔습니다. 마침내 중앙 사원이 파괴되고 왕인 쿠아우테목이 붙잡히면서 아스텍 제국도 끝이 났습니다. 수도가 세워진 지 176년이 지난 때였습니다.

 

흔히 알고 있는 바와는 달리, 유럽인들이 라틴아메리카로 쳐들어가면서 만난 자연은 야생의 신세계가 아니었습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기원전 2~3천 년 전부터 원주민들은 수렵채취와 더불어 화전농법, 계단식 농법, 치남파 등 집약농업을 대규모로 해왔습니다. 당시 유럽의 어느 곳보다 인구가 많은 큰 도시들이 이미 여러 차례 흥망을 거듭해온 곳이 라틴아메리카였습니다.

 

그림에서 보듯이 테노치티틀란은 호수 위에 떠있는 도시입니다. 도시가 자리한 텍스코코 호수는 해발 고도 2,200미터 고원지대에 위치해있고, 주변은 높이 5천 미터의 산들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들은 계단식 농지도 열심히 만들었지만 비탈진 땅에 물을 대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밤마다 계곡에 모여드는 냉기로 서리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땅에 바로 농사를 짓기 어려운 지형이었습니다.

 

[그림 2] 텍스코코 호 서쪽의 테노치티틀란. 아스텍의 수도로, 1345년에 세워져 1521년에 파괴되었다. (출처: wikipedia)


그래서 아스텍 사람들이 생각해낸 것이 치남파(Chinampa)였습니다(그림 3, 4). 테노치티틀란 사람들은 호수의 습지를 물 위 1미터 이상씩 돋우어 땅을 만들고 그곳에서 작물을 길렀습니다. 이렇게 하면 계곡에서 흘러드는 호수의 물을 그대로 이용할 수 있어 따로 물을 댈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호수의 물이 주변 기온을 높여주어 고원지대임에도 불구하고 서리 피해를 입지 않습니다. 치남파는 환경에 딱 맞는 농경방식이었던 것입니다.

 

테노치티틀란을 정복하기 위해 말을 타고 다리를 건너면서 정복자 코르테스는 퇴로를 차단당할까 두려워했다고 전해집니다. 사실 다리처럼 보이는 이 구조물은 교통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둑길이었습니다(그림 2). 몇 년마다 심한 가뭄과 홍수가 들었기때문에 수량을 조절해야 했고, 물의 염도가 계속 높아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제방이었던 것입니다.

 

아스텍 사람들은 땅을 기름지게 하기 위해 가축 분뇨를 사용했습니다. 인분도 이용했는데 가축 분뇨만으로는 양이 부족했고 호수의 수질도 보호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곳곳에 벽을 둘러 화장실을 만들고 그 아래에 카누를 매달았습니다. 카누에 모인 똥오줌은 다시 치남파에서 기르는 작물로 거름이 되어 돌아갔습니다.

 

아스텍 사람들은 전쟁의 신 우이칠로포츠틀리의 점지로 테노치티틀란을 수도로 삼았기때문에 이곳을 성스러운 곳으로 여기고 항상 깨끗하게 도시를 관리했습니다. 가죽 무두질처럼 수질을 나쁘게 하는 일들은 도시에서 먼 곳으로 보냈고, 날마다 도시를 쓸고 닦고 칠했습니다.

 

[그림 3] 치남파 상상도 (출처 : Ancient Pages)


에스파냐 정복자들이 테노치티틀란을 무너뜨린 후 10년 만에 텍스코코 호수는 똥물 구덩이가 되었습니다. 도랑과 둑길은 물 조절 기구가 아니라 오염을 조절하는 도구로 전락했습니다. 정치와 사회시스템이 몰락하면서 농경시스템과 도시의 기반시설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은, 이전과는 다른 문명이 된 것입니다.

텍스코코 호수는 이제 사라지고 없습니다. 홍수 문제로 17세기부터 물을 빼기 시작했고 호수의 물은 이제 남아 있지 않습니다. 현재 이곳에는 멕시코시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멕시코시티의 지반은 물을 잔뜩 먹은 진흙인데다, 지하수를 과도하게 뽑아내면서 이 부드러운 지반이 계속 가라앉고 있습니다. 20세기 들어서면서 도시의 어떤 곳은 9미터나 내려앉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침하는 물빠짐, 오폐수 처리, 여름 홍수 관리 그리고 지진이 발생했을 때 심각한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농경 방식과 도시 시스템은 그 자체가 문명이자 한 문명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어떤 문명을 낳는 요인이 무엇인가하는 것은 확인하기 어렵지만, 문명을 출현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은 자연환경과 농경입니다. 주어진 자연환경 속에서 농경을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환경 문제에 부딪히게 되며, 이에 대처하고 해결하면서 조직을 만들고 사회시스템, 즉 문명을 형성하게 됩니다.

테노치티틀란의 도시시스템이 반드시 자연친화적이고 지속가능했는지는 확언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스텍 사람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지역 환경을 이용할 수 있도록 구축한 시스템, 즉 아스텍의 문명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에스파냐의 군대가 점령한 직후 이곳의 농경 시스템이 무너지고 잇따라 도시와 환경도 함께 무너진 역사는 농경과 도시 그리고 종교와 정치가 하나의 문명을 구성하는 한 몸이라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그림 4] 멕시코시티의 치남파. 1912년. (사진 : Karl Weule, 출처 : Numundo)

 


 

참고자료

  • <오래된 신세계>, 숀 윌리엄 밀러 지음. 1995; 조성훈 옮김, 2013. 너머북스.
  • <녹색세계사>, 클라이브 폰팅 지음. 1991; 이진아/김정민 옮김. 2007. 그물코.

이 글은 녹색아카데미 웹진에 연재했던 글로, 아카데미 올림피카의 모임을 위해 다시 꺼내 소개합니다. 클라이브 폰팅의 <녹색세계사>를 읽어가면서 인류 문명의 흥망성쇠, 현재의 환경문제와 기후위기 그리고 석유에 기반한 현대도시문명의 역사를 알아보고, 녹색문명에 대해서도 고민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녹색세계사> 읽기 등 아카데미 올림피카의 모임 접수 안내는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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