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시기를 거치는 동안 형성되어온 유럽인의 사고방식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목적과 수단으로, 자연은 투쟁하고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게 했습니다. 이와 함께 ‘진보’(progress)라는 개념이 새롭게 떠올랐습니다.
고대 사회에는 ‘진보’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도 중국의 고대 사회에서도 역사는 특정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지요. ‘황금시대’는 이미 지나갔고, 그로부터 쇠퇴해가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황금시대'라는 말은 그리스의 시인 헤시오도스(750~650 BC)의 『일과 날』(Works and Days)에 등장합니다. 크로노스가 통치하는 황금시대를 시작으로 은시대, 청동시대, 영웅시대, 철시대 순서로 역사가 쇠퇴해간다고 고대 그리스인들은 생각했습니다.
초기의 기독교와 중세의 유럽인들도 세계는 에덴동산의 순수함을 잃어버렸고, 르네상스 시기의 사상가들도 자신들의 문화와 지성, 미덕과 용기 모두 그리스 로마 시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여겼지요.
17세기 말 과학과 기술이 점차 발달하면서 인간의 역사가 쇠퇴하기보다는 ‘진보’한다는 생각이 등장하였습니다. 18세기가 되면 모든 분야에서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는 시각이 나타나고 진보는 필연적이라는 믿음이 생겨납니다. 콩도르세는 『인간 정신의 진보에 대한 역사적인 개략』(1794)에서 인간이 가진 잠재력과 진보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강력한 신념을 드러냈습니다.
“인간의 완벽함은 무한하다. 이 완벽성은 점점 진보해 어떤 힘도 그것을 막을 수 없으며, 자연이 우리에게 맡긴 지구가 영속되는 한 계속될 것이다. 이 진보는 지구가 우주에서 지금 위치에 있는 한 역전되지 않을 것이다.”
- 콩도르세. 1794.
한편 1798년에 출판된 맬서스(Thomas Robert Malthus. 1766~1834)의 『인구론』은 인류의 역사를 비관적으로 보았습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를 부양할 수 있을 만큼 식량 생산량을 빠르게 증가시킬 수 없기 때문에 기아와 질병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식량이 부양할 수 있는 만큼의 인구만이 살아남을 것이고, 식량과 인구는 증감의 주기를 반복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19세기의 유럽은 물질적으로 진보하는 것처럼 보였으므로 맬서스의 주장은 거의 무시되었습니다. 식민지로부터 엄청난 물자가 들어오고 도시가 성장하고 공업이 발달하고 부양할 수 있는 인구의 수도 계속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진보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은 생 시몽, 콩트, 스펜서와 존 스튜어트 밀, 그리고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이르기까지 근대 사상의 중심을 이룹니다.
20세기 들어 세계대전을 두 차례 겪고 환경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유럽의 사상에 대한 비판이 일어났고, 이와 동시에 동양의 사상이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중국의 도가 사상, 우파니샤드와 자이나교 그리고 불교와 같은 인도의 사상들은 유럽과는 다른 시각으로 자연과 인간을 보았거든요.
이들 관점은 인간이 거대한 전체의 한 부분에 불과하며 자연과 인간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인간이 해탈할 수 있고 윤회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존재로서 다른 생물들에 비해 여전히 특권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우주를 지배할 수 있는 신의 대리자로 본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러한 특권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다른 생물들을 대할 때 현명해야 하며 자비심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스스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며 다른 존재들에 비해 더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가진 인간으로 태어난 기회를 잘 이용해야한다는 의미가 동양적인 사상에 담겨 있습니다.
참고자료
<녹색세계사>, 클라이브 폰팅 지음. 1991; 이진아/김정민 옮김. 2007. 그물코. (7장).
글 : 황승미
이 글은 녹색아카데미 웹진에 연재했던 글로, 아카데미 올림피카의 모임을 위해 다시 꺼내 소개합니다. 클라이브 폰팅의 <녹색세계사>를 읽어가면서 인류 문명의 흥망성쇠, 현재의 환경문제와 기후위기 그리고 석유에 기반한 현대도시문명의 역사를 알아보고, 녹색문명에 대해서도 고민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녹색세계사> 읽기 등 아카데미 올림피카의 모임 접수 안내는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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