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1] 울주  반구대 암각화  (출처: 나무위키)

 

우리나라 울주에 있는 반구대 암각화는 기원전 6천년 전, 즉 지금으로부터 약 8천 년 전의 그림으로, 고래잡이와 관련된 가장 오래된 기록 중 하나입니다. 이 암벽에는 육지동물들도 그려져 있지만 귀신고래, 범고래, 흰긴수염고래 등 다양한 고래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인간의 지나친 사냥으로 멸종하거나 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은 수없이 많은데 고래도 그 중 하나입니다. 빠르고 극적인 속도로 멸종에 처하게 된 종으로는 유럽의 오록스(Aurochs, 소의 야생 시조), 모리셔스 섬의 도도 새, 북아메리카의 나그네비둘기 등이 있습니다. 고래는 지금 현재 위기에 처한 해양생물종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고래는 지구에 살고 있는 동물 중 가장 큰 동물입니다. 향유 고래는 길이가 3미터 무게는 100톤이나 됩니다. 고래는 천적이 거의 없고 오래 살아서 수가 많은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한번에 출산하는 새끼 수가 적어, 수 세기 동안의 집중적인 포경산업을 거치면서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림 2]  17세기 포경산업 . 데인즈 아일랜드. 북극해와 그린란드해, 바렌츠해 사이에 있는 섬이다. 에이브라함 스페크, 1634년.(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Whaling)

 

고래는 참고래, 긴수염고래, 향유고래로 크게 세 종류로 나눕니다. 참고래는 느리고 죽으면 물에 뜨기 때문에 잡기에 딱 ‘좋은’ 고래라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입니다. 참고래는 다시 남반구형고래, 북반구형고래, 북극고래(혹은 그린랜드고래)로 나뉩니다. 긴수염고래에는 흰긴수염고래, 긴수염고래, 혹고래, 세이고래, 밍크고래가 있습니다.

고래는 고기보다는 기름을 얻기 위해 잡았습니다. 화석연료 이전에 불을 밝히기 위해서 사용되었는데, 1740년대 런던에서는 고래 기름으로 밝힌 가로등 수가 5천 개에 달했다고 합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기계 윤활유로 고래 기름이 사용되었고 거친 모직을 세정하는 데도 쓰였고, 고래 뼈로 코르셋과 우산, 채찍, 낚싯대, 칼자루도 만들었습니다(Christchurch uncovered).

 

[그림 3] 19세기 말  고래 기름 광고 . 1886년. (출처:  Christchurch uncovered)

 

참고래는 움직임이 느려서 잡는 데 대단한 기술이 필요없었기 때문에 18세기까지 주요한 고래잡이 대상이었습니다. 작살을 던져서 잡은 뒤 밧줄에 묶어 지쳐 죽을 때까지 두면 되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참고래는 지방층이 30~50 cm나 되고 뼈도 한 마리에서 1톤이나 나오기때문에 다른 고래보다 더 수익이 컸습니다.

초기 포경산업의 중심지 중 하나인 네덜란드의 스피츠베르겐의 해변에는 잡은 고래를 해체하는 작업장이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1600년부터 참고래를 대규모로 잡기 시작했고 단 25년 만에 고래를 거의 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림 4]  스피츠베르겐의 고래잡이 . 1645년. 보나벤투라 페터스. (출처:  wikipedia)

 

미국의 포경산업은 1650년대에 동부 해안에서 시작되었는데 단 50년 만에 동부 해안의 고래를 바닥내버렸습니다. 고래잡이 어선들은 더 북쪽으로 나갔고 1700년대 후반이 되면 모비딕에 등장하는 낸터켓이 포경산업의 중심 항구가 되어 포경선이 130척이 되었습니다.

1840년대는 포경산업이 절정을 이룬 때였습니다. 이때 태평양에서 조업하는 포경선 가운데 미국 배가 700척이 넘었습니다. 북위 88도~남위 55도 사이의 고래 어장을 포경선이 뒤덮었던 시기가 이 때입니다. 배 한 척이 한 철 동안 잡는 고래 수가 100마리였으니, 미국이 태평양에서 한 철에 잡은 고래는 7만 마리가 됩니다. 결국 태평양 포경산업은 10년 후에 무너집니다.

고래 개체수가 줄어 포경산업이 경제성을 잃어가고 있던 중이었는데, 20세기 초반 기술 혁신이 일어나면서 다시 고래 사냥이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다에서 고래를 가공하고 기름을 저장할 수 있는 장치를 배에 갖추면서 더 오래 바다에서 머무를 수 있게 되었고 채산성이 생긴 것입니다. 게다가 작살에 폭약을 달면서 빠른 긴수염고래도 잡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930년대 이후로 고래가 급격히 줄고 산업환경도 바뀌어 수익이 떨어졌을뿐만 아니라 고래의 존재 자체가 위협을 받게 되었습니다. 1930년대에는 매년 흰긴수염고래 17만 마리를 잡았고, 1960년대가 되면 한 해 7천 마리로 줄어듭니다. 1970년대에는 23마리가 됩니다. 다른 종의 고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림 5] 포경산업으로 죽은 고래 수. 1986년 모라토리엄 시행 이전과 이후 비교. (출처:  Oceancare)

 

1946년에 국제포경협의회(IWC)가 설립되어 고래 산업을 규제하기 시작했지만 거의 실효성이 없었습니다. 할당량을 권고하는 수준이었을 뿐인데다가 그 할당량만큼 잡기도 힘들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포경산업에 대한 모라토리엄이 1982년 발표되고 1986년부터 시행되면서 상업적인 포경이 전면적으로 금지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과학적인 포경’ 등 다양한 이유로 고래잡이가 계속 이루어졌습니다. 2006년에는 IWC 연례 회의에서 포경 금지령 종료에 대한 표결이 있었고, 의결 정족수(4분의 3)를 채우지 못해 부결되었습니다. 상업적인 포경을 허용하라는 요구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참고자료
<녹색세계사>, 클라이브 폰팅 지음. 1991; 이진아/김정민 옮김. 2007. 그물코. (8장).

 

글 : 황승미


이 글은 녹색아카데미 웹진에 연재했던 글로, 아카데미 올림피카의 모임을 위해 다시 꺼내 소개합니다. 클라이브 폰팅의 <녹색세계사>를 읽어가면서 인류 문명의 흥망성쇠, 현재의 환경문제와 기후위기 그리고 석유에 기반한 현대도시문명의 역사를 알아보고, 녹색문명에 대해서도 고민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녹색세계사> 읽기 등 아카데미 올림피카의 모임 접수 안내는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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